농협도 새마을금고도 닫혔다...대출 막으면 집값 잡힌다는 착각, 정부가 놓치고 있는 것

농협이 비조합원 대출을 막았습니다. 새마을금고도 집단대출과 비조합 대상 대출을 중단했습니다. 불과 몇 달 사이에 2금융권 대출 창구가 줄줄이 닫히고 있습니다. 정부는 가계부채를 잡겠다고 했고, 숫자상으로는 효과가 나타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이게 정말 문제를 해결하는 걸까요. 아니면 문제를 더 깊은 곳으로 밀어넣는 걸까요.
새마을금고·농협 대출 중단, 불과 몇 달 만에 2금융권 셧다운 수준
올해 초 새마을금고와 신협이 이주비·중도금 집단대출을 중단했습니다. 1금융권이 이미 막혀 있던 상황에서 2금융권마저 문을 닫기 시작한 겁니다. 그러자 상대적으로 금리가 낮은 농협으로 대출 수요가 한꺼번에 몰렸습니다.
결과는 예상대로였습니다. 농협의 올해 1~3월 누적 가계대출 증가액이 5조 1000억원을 기록했습니다. 지난해 연간 증가액 3조 6000억원을 석 달 만에 뛰어넘은 겁니다. 금융당국이 부여한 연간 목표치 1%는 3월에 이미 초과됐습니다. 그러자 이번엔 농협도 비조합원 대출을 전면 차단했습니다. 한 곳을 막으면 다른 곳으로 몰리고, 그 곳도 막히는 패턴이 불과 몇 달 사이에 그대로 반복된 겁니다.
대출 절벽 앞에 선 서민들, 갈 곳은 대부업체뿐인가
문제는 이 규제의 칼날이 누구를 향하고 있냐는 겁니다.
신용도가 높은 사람들은 어떻게든 대출을 받습니다. 1금융이 막혀도 조건이 좋으면 2금융에서 받을 수 있고, 2금융이 막혀도 다른 루트가 남아 있거든요. 현금 보유자들은 대출 규제와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규제가 강해질수록 오히려 현금 부자들의 시장 지배력이 커지는 구조가 됩니다.
반면 신용도가 낮은 취약차주들은 선택지가 없습니다. 1금융이 막히면 2금융으로, 2금융이 막히면 3금융으로, 3금융마저 막히면 법정 최고금리 수준의 대부업체 문을 두드려야 합니다. 급하게 전세 보증금이 필요한 세입자, 잔금 날짜가 코앞인데 대출이 막힌 실수요자, 생활비가 급한 저신용자. 이들에게 대출 절벽은 숫자의 문제가 아니라 생존의 문제입니다.
대출 총량을 조이면 금융사들은 자연스럽게 신용도 높은 사람 위주로 대출을 내줍니다. 리스크를 줄이려는 금융사 입장에서는 당연한 선택이거든요. 결국 신용도가 낮을수록, 급할수록 더 높은 금리를 감당해야 하는 구조가 만들어집니다. 가계부채를 줄이겠다는 정책이 가장 힘없는 사람들을 가장 비싼 금리로 내모는 역설.
계약금 3,000만 원을 넣고 잔금 날짜가 2주 남은 실수요자가 있다고 가정해봅니다. 1금융권에서 대출이 거절됐습니다. 2금융권으로 갔더니 새마을금고가 집단대출을 중단한 상태입니다. 농협으로 갔더니 비조합원이라 안 된다고 합니다. 남은 선택지는 금리 15% 이상의 대부업체뿐입니다. 계약을 파기하면 계약금 3,000만 원을 날립니다. 대부업체 대출을 받으면 이자 부담이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입니다. 이게 지금 대출 절벽 앞에 선 실수요자의 현실입니다.
정부의 대출 규제가 성급한 이유, 증상만 누르고 원인은 그대로다
가계부채를 관리해야 한다는 방향 자체는 맞습니다. 한국의 가계부채는 GDP 대비 100%를 넘는 수준이고, 이 상태에서 부채가 계속 늘면 금리 충격이나 경기 침체가 왔을 때 시스템 전체가 흔들릴 수 있거든요.
문제는 방식입니다. 지금 정부가 하는 건 대출을 막는 것입니다. 그런데 대출이 왜 이렇게 많이 필요한지, 그 원인은 건드리지 않고 있습니다.
가계부채 문제의 근본에는 집값이 있습니다. 집값이 높으니 대출이 필요하고, 대출이 늘어나니 부채가 쌓입니다. 대출을 막는 건 증상을 억누르는 것이지 원인을 해결하는 게 아닙니다. 열이 나는 환자에게 해열제만 먹이고 왜 열이 나는지는 들여다보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대출 규제만으로 해결 안 되는 구조적 이유, 공급과 세제가 함께 움직여야 한다
공급 문제와 세제 문제가 함께 해결되지 않으면 대출 규제만으로는 한계가 명확합니다.
대출이 막히면 거래가 줄어듭니다. 거래가 줄면 신규 공급 유인도 함께 위축됩니다. 집을 지어도 살 사람이 없다면 공급이 늘어날 이유가 없거든요. 결국 공급이 부족한 상태가 유지되면 집값은 내려가지 않습니다. 집값이 내려가지 않으니 대출 수요도 사라지지 않습니다. 규제가 풀리는 순간 억눌렸던 수요가 한꺼번에 터져 나오고, 똑같은 패턴이 반복됩니다.
세제도 마찬가지입니다. 다주택자에 대한 과세 구조, 양도소득세 체계가 실거주 수요와 투자 수요를 제대로 구분하지 못하면 규제의 효과는 반감됩니다. 대출을 막아도 현금 보유자들은 여전히 부동산을 살 수 있거든요. 결국 대출 규제는 현금이 없는 실수요자만 더 힘들게 만드는 구조로 귀결됩니다.
대출 규제는 필요한 도구입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집값을 낮출 수 있는 공급 확대와 세제 개편이 동시에 이뤄져야 가계부채 문제가 근본적으로 해결될 수 있습니다. 한 축만 잡아당기는 정책은 결국 다른 축에서 터지게 돼 있습니다.
지금 정부의 속도는 너무 급합니다. 새마을금고, 농협이 연달아 대출 창구를 닫는 동안 공급 대책과 세제 개편 논의는 제자리걸음입니다. 막는 것만 빠르고, 근본을 고치는 건 더딥니다. 이 불균형이 계속되는 한 가계부채 문제는 해결되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 피해는 언제나 가장 힘없는 사람들에게 먼저 돌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