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건설·삼성물산 네옴시티 터널 계약 해지, 정산 완료 발표 뒤에 숨겨진 것들
현대건설과 삼성물산이 사우디아라비아 네옴시티 핵심 프로젝트인 더 라인 지하 터널 공사에서 발주처로부터 계약 해지 통보를 받았습니다. 양사는 즉각 공시를 통해 기투입 비용에 대한 정산이 완료되어 재무적 손실은 없다고 밝혔습니다.
그런데 이 발표를 그대로 받아들이기 어렵습니다. 건설업계 특성상 정산 완료라는 말이 담지 못하는 비용들이 있습니다. 이 글에서는 공시 뒤에 숨겨진 세 가지 의문점과 함께 이 사태가 조합원과 건설주 투자자에게 어떤 의미를 갖는지를 정리합니다.

의문 1. 정산 완료는 시공비만의 이야기다
건설사들이 강조하는 정산 완료는 현장에서 실제로 집행된 시공비, 즉 인건비와 자재비에 국한된 이야기일 가능성이 큽니다. 대형 해외 프로젝트에서는 장부에 잡히지 않는 비용이 상당합니다.
중동 시장은 기술력만으로 수주가 성사되지 않습니다. 수년간 현지 유력 인사들과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정보를 수집하기 위해 투입된 영업 비용과 대관 비용이 있습니다. 사우디 발주처가 시공비를 정산해줄 때 이 비용까지 정산 항목에 포함해줄 가능성은 낮습니다. 이 비용은 장부상에는 나타나지 않지만 기업의 실질 체력을 갉아먹는 손실입니다.
인력의 기회비용도 있습니다. 더 라인 터널은 전 세계 유례없는 난공사로 현대건설과 삼성물산의 최고급 엔지니어들이 수만 페이지의 설계 도면을 작성하며 공을 들였습니다. 이들의 인건비 일부가 정산됐다 해도 이들이 이 프로젝트에 매몰되느라 놓친 다른 기회에 대한 보상은 없습니다. 다른 유망 현장에서 창출할 수 있었던 수익과 기술적 성과가 사라진 것입니다.
의문 2. 원청 정산이 하청업체까지 닿지 않는다
대형 건설사는 혼자 일하지 않습니다. 수많은 협력사와 하청업체가 줄줄이 엮여 있는 구조입니다.
현대건설과 삼성물산이 발주처로부터 정산을 받았다고 해서 그 아래 하청업체들까지 무사한 것은 아닙니다. 원청사가 계약 해지를 당하면 하청업체들과 맺은 장비 대여, 인력 공급, 기자재 계약도 줄줄이 파기됩니다.
문제는 발주처가 원청에 준 정산금이 하청업체들의 중도 해지 위약금이나 현지 인력 해고 보상금까지 넉넉히 포함하지 않았을 경우입니다. 이 경우 원청 건설사들은 하청업체 소송을 막기 위해 추가 자금을 지출해야 하는 상황이 됩니다.
현지 협력사나 인력과의 계약 파기는 사우디 현지 법원에서의 소송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절대 갑인 발주처를 상대로 소송할 수 없는 하청업체들의 화살은 결국 우리 기업들을 향합니다.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법무 비용과 기업 이미지 실추는 정산금으로 해결되는 성질이 아닙니다.
의문 3. 기술이 넘어가고 시공 이익은 못 챙기는 시나리오
이번 사태의 본질은 우리 기업의 실책이 아니라 발주처의 일방적인 사업 재편입니다.
최근 국제 유가 불안정성과 사우디의 대형 이벤트 유치 비용 부담이 겹치면서 네옴시티 같은 장기 프로젝트의 추진 동력이 약화되고 있습니다. 이번 터널 공사 해지는 사우디 정부가 언제든 계획이 바뀌었으니 그만두라고 할 수 있는 절대 갑의 위치에 있음을 다시 확인해준 사건입니다.
더 우려스러운 것은 기술 유출 가능성입니다. 국내 건설사들이 공들여 제안한 설계 아이디어와 공법은 이미 발주처 손에 넘어가 있습니다. 계약 해지 이후 사우디 측이 이 기술을 바탕으로 제3국 저가 건설사를 고용해 공사를 재개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습니다. 기술만 제공하고 시공 이익은 챙기지 못하는 시나리오입니다.
지금 당장은 정산을 받았지만 향후 사우디 재정이 더 악화될 때 다른 현장에서도 이처럼 원만한 정산이 이뤄질지는 보장이 없습니다.
이 사태가 조합원과 건설주 투자자에게 의미하는 것
이번 네옴시티 계약 해지는 해외 사업 리스크가 국내 건설사 재무에 어떻게 영향을 주는지를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조합원 입장에서는 시공사 선정 시 해당 건설사의 해외 사업 리스크 노출 정도를 확인할 필요가 있습니다. 해외 대형 프로젝트에서 예상치 못한 손실이 발생하면 국내 정비사업 현장의 자금 지원 능력에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시공사의 재무 건전성이 국내 사업 수행 능력과 직결됩니다.
건설주 투자자 입장에서는 이번 계약 해지가 현대건설과 삼성물산의 해외 수주 잔고와 향후 매출 전망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분기 보고서에서 확인해야 합니다. 정산 완료라는 공시가 실질적인 손실 없음을 의미하는지, 아니면 장부 밖의 비용이 숨어 있는지를 꼼꼼히 따져봐야 합니다.
두 건설사가 강조하는 재무적 손실 없음이 사실이라면 단기 주가 영향은 제한적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번 사태가 중동 해외 수주 전략 전반에 대한 재검토로 이어질 경우 중장기 수주 전망 변화를 함께 봐야 합니다.
수주 금액보다 계약 방어 논리가 먼저다
네옴시티는 한국 건설업계에 기회이지만 동시에 거대한 리스크이기도 합니다. 이번 지하 터널 계약 해지는 단순한 해프닝이 아니라 중동 발 리스크의 전조로 읽어야 합니다.
건설사들이 앞으로 갖춰야 할 것은 수주 금액이라는 외형이 아닙니다. 발주처의 일방적 계약 해지 시에도 영업 비용과 기회비용을 실질적으로 보전받을 수 있는 정교한 계약 방어 논리입니다. 특정 지역과 프로젝트에 집중된 포트폴리오를 분산해 단일 리스크가 기업 전체 흔들림으로 번지지 않도록 관리하는 것도 필요합니다.
1,500조 원이라는 네옴시티의 장밋빛 전망보다 중요한 것은 보이지 않는 비용을 막아내고 실질적인 수익성을 확보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