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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 체크

미국 집값 얼마나 올랐나..집 한 채에 연봉 5년


1980년대 중반 미국에선 연봉 3년 반치면 집을 살 수 있었습니다. 금리는 10%를 훌쩍 넘었는데도 말이죠. 헌데 지금은 연봉을 꼬박 다섯 해를 모아야 집 한 채 값이 됩니다. 금리는 그때보다 낮고 경제는 성장했는데 집은 오히려 더 멀어졌진 셈이죠. 단순한 통계가 아니라 수천만 가구의 현실이라는 점에서 무게감이 남다릅니다.

2024년 기준 미국 중위 주택 가격은 약 41만 달러입니다. 우리 돈으로 5억5000만원이 넘는 수준이죠. 중위 가구 소득이 약 8만 달러이니 집값 대 소득 배율이 딱 5배인 셈입니다. 1980년대 중반 이 배율은 3.6배였거든요. 40년 사이 약 39% 악화됐습니다. 한 세대가 지나는 동안 집은 그만큼 더 멀리 달아나버렸습니다.

그 시절엔 금리가 지금보다 훨씬 높았는데도 월 상환 부담은 오히려 견딜 만했습니다. 금리가 높아도 원금이 작으면 버틸 수 있다는 단순한 산수가 통하던 시절이었거든요. 소득으로 집값을 따라잡을 여지가 그만큼 컸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지금은 그 여지가 사라졌습니다. 러닝머신 위에서 뛰는데 벨트 속도만 두 배로 빨라진 꼴이죠.

왜 이렇게까지 벌어진 걸까요. 하루아침에 생긴 일이 아닙니다. 공급 규제와 저금리 장기화, 투자 수요 유입이 수십 년간 켜켜이 쌓인 결과거든요. 특히 미국 주요 도시의 조닝 법, 즉 용도지역제가 신규 주택 공급을 사실상 틀어막는 장벽 역할을 해왔습니다. 공급은 막혀 있는데 수요는 꾸준히 늘었으니 가격이 오르는 건 어찌 보면 예고된 수순이었던 셈이죠.

거기에 팬데믹이 불을 질렀습니다. 2020년부터 2022년까지 단 2년 사이에 미국 중위 주택 가격이 40% 넘게 뛰었거든요. 제로금리에 가까운 초저금리가 수요를 확 끌어올린 데다 재택근무 확산으로 더 넓은 집을 찾는 사람들이 한꺼번에 시장으로 쏟아졌습니다. 편의점 앞에 줄은 100명인데 계산대는 하나뿐인 상황이었다고 보시면 됩니다. 당시 신규 주택 착공 건수는 수요의 절반도 채우지 못했거든요.

블랙록 같은 기관 투자자들도 한몫 단단히 했죠. 2021년 한 해에만 미국 전체 단독주택 거래의 15~20%를 기관 투자자들이 쓸어담았습니다. 이들은 집을 사서 임대 수익을 올리는 이른바 '단독주택 리츠' 전략을 본격화하기 시작했는데요. 일반 실수요자 입장에선 같은 매물을 놓고 수십조원 규모의 기관과 경쟁해야 했습니다. 개인이 현금 다발을 든 기관과 같은 출발선에 선 꼴이었던 셈이죠.

금리를 올렸더니, 집이 더 안 팔렸습니다

인플레이션을 잡겠다며 연준(미국 중앙은행)이 2022년부터 금리를 22년 만의 최고 수준으로 끌어올렸습니다. 그런데 말이죠. 이게 집값을 잡기는커녕 기이한 부작용을 낳았거든요. 낮은 금리로 모기지를 묶어둔 기존 집주인들이 집을 팔지 않기 시작한 겁니다. 팔았다가 높은 금리로 다시 대출받으면 손해니까요. 매물은 줄고 집값은 꺾이지 않는 이 역설, 교과서 어디에도 없는 장면이었습니다.

모기지 금리가 7%를 넘어서며 실질 주거비 부담은 역대 최고 수준이 됐거든요. 중위 가격 주택을 30년 고정 모기지로 살 때 월 상환액이 2020년 대비 거의 두 배 수준까지 치솟았습니다. 중위 소득 가구 월수입의 40% 이상을 주거비로만 써야 한다는 뜻이죠. 통상 주거비가 소득의 30%를 넘으면 '주거 과부담' 가구로 분류합니다. 미국 중산층 상당수가 이미 그 선을 넘어선 셈이죠.

소득은 찔끔 올랐습니다. 2020년부터 2023년 사이 미국 중위 가구 소득은 약 15% 오르는 데 그쳤거든요. 같은 기간 중위 주택 가격은 40% 넘게 뛰었습니다. 밥 한 숟갈 더 먹을 동안 밥그릇 값이 두 배 뛴 상황인 거죠. 이 격차가 좁혀지지 않는 한 내 집 마련은 점점 더 먼 꿈이 되어갑니다.

2024년 기준 미국 30대의 자가 보유율은 베이비붐 세대가 같은 나이였을 때보다 10~15%포인트 낮은 수준이거든요. 학자금 대출에 물가 상승까지 겹치면서 종잣돈을 모을 시간 자체가 없었던 겁니다. 저축률이 낮아서 집을 못 사는 걸까요, 아니면 집값이 너무 올라서 저축이 의미 없어진 걸까요. 밀레니얼과 Z세대에게 내 집 마련은 사실상 다른 세대 얘기가 돼버렸습니다.

미국 연준 데이터에 따르면 부동산 자산의 약 70%는 55세 이상이 보유하고 있습니다. 집값이 오를수록 이 자산 격차는 복리처럼 불어나는 구조거든요. 윗세대가 쥔 집의 평가 차익이 아랫세대의 근로소득 증가 속도를 이미 앞질렀다는 연구도 있습니다. 세대 간 자산 불평등이 주거에서부터 고착화되고 있는 겁니다. 개인이 더 열심히 일하고 더 아낀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닌 셈이죠.

한때 미국에서 집은 중산층 진입의 티켓이자 노후 안전망이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부모에게 증여나 상속을 받지 못하면 첫 집 마련 자체가 어려운 구조가 되어버렸거든요. 집이 계층 이동의 사다리 역할을 하고 있는 건지, 아니면 이미 집을 가진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사이에 세워진 벽이 돼가는 건지. 연봉 다섯 해치짜리 집 앞에서 한 번쯤 물어봐야 할 질문입니다.